6. 훌륭하신 할아버지

6. 훌륭하신 할아버지

 
김  광  정 (일 석  2 대손)金 光 正 (一石 2代 孫女)

김  광  정 (일 석  2 대손)

金 光 正 (一石 2代 孫女)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한 이불 속에서 자면서 성장했다.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를 늘 그리워하시며 이야기를 꺼내곤 하셨다.  광남학교를 창설하셔서 동네 애들을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셨고, 청신여학교를 세워서 여자 애들을 가르치셨으며 독립투사로 활동하셨던 할아버지에 대해서 옛날이야기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역사관이나 교육관으로 이어가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인내와 근면으로 살아오셨음을 인지할 뿐이었다.  그저 막연히 훌륭했던 우리 할아버지, 아내로서 내조를 완벽하게 해내시느라 어려움이 많으셨던 우리 할머니로 받아들이는 게 고작이었다.  교사로서 30여 년을 살아오면서도 할아버지의 업적에 관심도 없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육영 사업과 독립운동을 하신 훌륭한 분이셨지만 우리 가족과 후손은 뼈저린 가난과 역경을 이겨내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생활하기에 힘겨웠고 그 역경 속에서 해야 할 학업과 업무에 정진할 뿐이었다.할머니의 옛날이야기 같은 그런 이야기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할아버지의 업적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손수 여기저기 다니시며 어린 아이들이면 누구나 데려다 먹이고 입히시면서 학교에 다니도록 독려하셨다고 한다.  친척 중에서도 못 배운 청소년은 데려다 숙식을 제공하면서 배울 수 있게 하셨고 그렇게 하다가도 도중에 학업을 포기하면 그 집을 찾아가셔서 포기하게 된 동기를 듣고 그걸 해결해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셨고 끝내 그 아이를 데려다 가르치고야 마는 그런 성품이셨다고 한다.  그 어려움이란 대부분 식량의 부족이나 부모의 병환, 난관에 부딪힌 가정사였기 때문에 늘 경제적인 어려움이 뒤따랐다고 한다.  그 때마다 할머니는 말없이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으셨으며 반지나 비녀 등을 빼서 드려야만 했다고 들었다.

청주 제일교회 장로로 신앙생활을 하시던 시절에 미국 선교사가 우리 민족을 무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듣다못해 여러 차례 심한 논쟁을 하시다가 분개하여 장로직을 포기하셨다는 이야기도 할머니께 들은 일화중의 하나이다.

일본 경찰이 가끔 할아버지를 결박(結縛)하고 용수를 씌우고 들어와 집을 뒤지는 날은 군화를 신은 채 벽장이며 마루 밑까지 샅샅이 뒤지고 아궁이의 재를 고무래로 살그머니 꺼내어 독립운동을 위한 서류나 어떤 문서 또는 영수증을 태운 흔적을 체포의 증거물로 찾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문간채에는 식객이 끊임없이 드나들었으며 그 중에는 독립운동가도 많았고 청주 대성학원 설립자 김원근님도 계셨는데 그 분은 한 때 할아버지의 서사로 일을 했으며 두뇌가 명석하여 토지나 문서의 통계에 능했다고 한다.  대전 동산 중․고등학교(향촌학원) 설립자 손기철(孫基喆)님도 할아버지께서 데려다 가르치신 분들 중에 한 분이라고 한다.후진 양성을 위해 사재를 아낌없이 터시고 베풀며 여자들의 교육까지도 염려하여 청신여학교를 설립하셨음도 대단한 선각자이셨음을 뒤늦게 깨달으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셋째 오빠가 충북대학교 약학대학에 입학했을 때 조건상 교수님께서 충북 독립운동사에 꼭 있어야 할 한 분 김태희님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서 그 업적을 찾으려고 특강 시간에 학생들에게 김태희님에 대한 탐구 조사 과제를 내셨다고 듣고 우리 가족은 놀랍고 의아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에 대하여 생각하는 분이 계셨다는 게 당시로는 경이롭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도 않았으며 그 문제에 관한 한 완전히 도외시되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가족 모두는 조건상 교수님의 연구로 할아버지의 업적이 밝혀지기 시작된 점을 학자로서의 교수님의 사려 깊은 추구와 열정에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교육자요 선각자이며 독립투사였던 우리의 할아버지께서 오늘의 청남학교의 모태에 씨를 뿌리신 것에 대하여 나는 커다란 자긍심을 가지고 청남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할아버지 영전에 눈물어린 감사를 드린다.

서기 2005년 1월 25일

*『愛國志士 一石 金泰熙의 孫女, 청주용담초등학교 교사 寄稿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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