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김태희선생 민족투쟁

3. 김태희 선생의 민족투쟁

문하생 김현태 (門下生 金 顯 泰)

세월은 어느덧 덧없이 흘러 내가 사모하고 존경하는 선생이 가신지가 벌써 근 삼십여 성상이 되었도다.  선생은 충북에 아니 한국에 뛰어난 투철한 민족주의자로 말보다 실천에 옮기는 실행자입니다.  선생은 내 민족 내 국가 사랑하기를 내 몸과 내 가정보다 더 사랑하였으며 침식을 잊고 동분서주하며 오로지 항일투쟁에 선봉이 되셨습니다.  내 민족 내 국가를 위하여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후배 양성에 전력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충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사립 광남학교를 만세 반석위에 세워 오로지 자기의 뜻한바 장래 국가에 동량이 될 학도들에게 민족사상을 머리에 뚜렷이 심어주셨습니다.  조국을 위하여 백절불굴 노력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한 항일투쟁에 선봉이 된 투철한 선생이십니다.직접 훈육을 하셨습니다.  나 자신은 선생을 애모하는 마음 간절하여 남기고 가신 그 투철한 애국사상이 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일변으로는 청년운동과 정치운동에 주간이 되는 청주청년회와 청주신간회는 선생의 뼈저린 활발한 노력으로 장족 발전하였으며, 그의 애국사상 고취에 대하여는 청주사회, 아니 충북사회가 공인하는 바이오며, 기미년 3․1운동 당시에도 뜻있는 동지를 규합하여 내적으로 외적으로 독립운동에 힘썼습니다.  반면에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밀송하는 등 동지 곽재기씨는 저 유명한 세상을 놀라게 한 밀양폭탄사건에 주동 인물이었음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로 백절불굴 끝까지 조국광복을 위하야 힘써왔습니다.

김태희 선생님은 조국광복의 기쁜 날을 더 기다리시지 못하시고 한 많고 원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나 영면하시게 되셨습니다. 

1966년 7월 20일

*『金顯泰(청주제일교회 장로) 親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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