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
一石 先生의 삶이 새롭게 조명됨을 치하합니다
崔東晙
忠北基督敎 歷史 硏究會 會長
國運이 쇠퇴하여 기울어져 가는 韓末과 國權을 앗긴 暗黑의 시대에 독실한 信仰과 敎育을 통하여 國獨立運動을 하신 金泰熙님은 淸州邑敎會(淸州第一敎會)의 長老님이셨습니다.
어려서 漢學을 하셨으나 일찍 새로운 思想에 눈을 떠 開化하시러 基督敎에 입문하여 敎會의 長老로서 독실한 信仰生活을 하시면서 平生을 地域社會와 나라를 위하여 獻身奉事하신 큰 스승이요 愛國志士이십니다.
長老님께서는 露日戰爭(1904)의 激動期에 27歲의 젊은 靑年時節에 敎育立國의 깃발을 들고 方興根, 金元培 등과 함께 廣南學校(淸南學校 前身)를 創設하고 15名의 學生으로 開校한 敎育의 先驅者이시기도 합니다.
그後 學校經營이 어렵게 되자 美國宣敎師 閔老雅 牧師와 協力하여 이 地域社會 最初의 近代敎育機關 (淸南學校, 淸信女學校)를 經營하셨고, 1909年에는 秘密結社 大東靑年黨에 加入하여 長男 (金基澤)과 함께 獨立運動에 가담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長老님께서는 三一運動이 일어나자 同志들과 萬歲示威에 積極 參與하셨고, 養蜂으로 資金을 마련하여 獨立資金을 上海臨時政府에 密送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밖에도 長老님께서는 항상 나라 사랑하는 일에나 모든 行動이 타의 模範이 되셨고 淸州靑年會와 新幹會 淸州支會를 組織하여 獨立思想을 고취하고 後學들을 養育하셨습니다.
1921年에는 이 고장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高麗 때의 木造建物인 望仙樓가 헐리고 그 자리에 武德殿이 新築될 때 長老님은 우리 民族遺産인 望仙樓를 再建하여 淸南學校의 校舍로 淸州靑年會 會館 겸 淸州地域社會의 文化의 場으로 使用하도록 心血을 바치셨습니다. 그리하여 1935年 淸南學校 開校記念式 때 敎育有攻者로서 表彰을 받으시기도 하셨습니다.
忠南 新灘津으로 移居하신 後로도 그곳에서 夜學을 開設하여 靑少年들을 指導하시면서 獨立思想을 鼓吹하셨고 1935年 新灘津이 大洪水로 危急한 지경에 이르자 그는 부락민 100여 名을 배로 무사히 救出하셨고 水災民 救護에도 앞장서 水害復舊에 獻身하셨으며 部落民의 飮料水를 해결하는 등 도처에서 同族을 아끼고 靑年들을 指導한 民族運動의 先驅者的 役割을 하시다가 1936年 6月 祖國光復의 한을 품은 채 逝去하신 金泰熙 長老님의 크신 업적을 늦게나마 後孫들이 記錄으로 남기게 된 것을 그게 致賀드립니다.
2006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