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오로지 민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해 온 애국지사 일석 김태희 선생의 묘소는 고향인 충북 청원군 미원면 운암리 산 3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묘소 앞에는 비석이 서 있는데 그 비문은 다음과 같다.
김태희 선생 약력(金泰熙先生 略歷)
1877년 정축(丁丑) 9월 12일 청주에서 출생, 우리 겨레가 낳은 정의의 애국지사 김태희선생은 우리 국가의 빛이 되시여 우리 청주 사회의 선각자로서 밝은 등불 되시는 분으로 어두움에서 광명(光明)을 비치기 위하여 한 평생 침식(寢食)을 잊으시고 신학문(新學問)에 굶주린 청주 사회를 개화(開化)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1904년 광무팔년갑오(光武八年甲午) 11월에 청남학교를 설립하시고 국가의 동량(棟樑)이 될 인재를 양성(養成)하시여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뼈 저리는 눈물의 말씀으로 분골쇄신(粉骨碎身) 오직 국권회복(國權恢復)의 광복(光復)을 잊지 말라고 훈육(訓育)하시며 백절불굴(百折不屈)하는 굳센 의지로 조금도 굽힐 줄 모르는 용감무쌍한 자주독립 정신으로 민중을 계몽 하시기에 여념(餘念)이 없으셨고 청주청년회와 신간회를 조직하여 일제의 악랄(惡辣)한 탄압(彈壓) 속에서도 동지를 규합(糾合)하여 독립사상을 고취(鼓吹)하였으며 상해임시정부와 내통(內通)하여 심혈(心血)을 기우려 조국광복운동(祖國光復運動)에 분투노력(奮鬪努力) 하시다가 신탄(新灘)으로 이사하여 병고(病苦)로 1936년 6월 26일 애석(哀惜)하게도 서거(逝去) 하시니 향년(享年) 60이더라.
서기1970년 경술(庚戌) 12월 18일
문인(門人) 김 현 태 (金顯泰)
식(識) 정 기 환 (鄭箕煥)최 정 모 (崔貞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