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 김태희 지사 미망인 곽정신 여사

(故 金泰熙志士 未亡人 郭貞信女史)

“일인(日人)에게 뺏긴땅   국유지(國有地)로 돼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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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탄압 밑에서 독립운동으로 평생을 바쳐온 고 김태희(金泰熙) 독립투사의 미망인 곽정신여사(郭貞信女史, 81세, 청주시 사직동 354)가 팔순의 노경(老境)에 헐벗고 굶주리고 있어 사회의 따스한 손길을 아쉬워하고 있다.  

고 金지사는 1877년 9월 12일 淸州에서 출생, 당시 민족 개화운동의 선구자로 1904년 8월 청남학교(淸南學校)와 1906년 청신여학교(淸信女學校)를 각각 설립, 새 학문에 의한 민족자결정신을 주입시키는데 앞장섰고, 또한 서울에서 주동이 된 비밀결사 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 신백우(申伯雨) 신팔균(申八均)씨 등과 함께, 손병희(孫秉熙)선생이 주도하는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에 가담하여 왜놈과 싸웠었다.

金지사는 또한 민족문화 육성에 뜻이 굳어 여말(麗末)에 세워진 망선루(望仙樓)를 1921년 왜놈들로부터 불하받아 문화재로 개인이 보관하다 그 후 교육기관에 기증했다.

고 金지사는 당시 개인소유로 청주시 개신동 山 9번지에 4천8백 평 남짓한 임야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독립운동자로 낙인 찍혀 왜놈에게 몰수당하고 말았다.

광복의 새 기쁨을 보지 못 한 채 金지사는 1936년 6월 26일 60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 했다.

金지사는 후세에 기리 빛날 공적으로는 『청주시지(淸州市誌)』 『항일순국의열사전』등에 이 고장의 유일한 투사로서 전하여지고 있다.

고 金지사의 품은 갸륵한 뜻에 내조의 공이 많던 부인 郭여사는 남편과 사별한 후 셋방살이로 전전, 불구자인 아들 김기혁(金基赫)씨가 직공의 일로 부양하고 있으나 적은 푼돈으로 생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어 끼니를 굶고 있는 딱한 사정에 있다. “아무리 고생이 되어도 동정은 안 바래요, 빼앗긴 우리 땅만 찾게 해 주시요”하며 울먹이고 있는 미망인, 郭여사의 임야는 지난 1964년 2월 12일자로 국유지로 되었다고 한다.


*『京鄕新聞』1966.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