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망선루 (望仙樓)에 대하여
가동 이명구 (可東 李 明 求)
망선루는 중국 한(漢) 무제(武帝) 오봉 원년(五鳳元年)에 청주 명물 남석교(南石橋)와 동시에 건립된 우리 청주 고적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건물이다.
청주주성국민학교(전 영정보통학교) 여자부를 임시 두기 위하여 당국에 교섭하여 망선루 전부를 교실로 사용 하였던 것이다.
일정시 충북경찰국에서 유도장 소위 무덕전(柔道場 所謂 武德殿)을 건축키 위하여 청주경찰서와 망선루를 교환 조건 하에 천여 년 간 고적으로 보존되어 왔던 건물이 부득이 철거되는 비운에 봉착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중대한 건물을 철거함에는 법규상 공개 입찰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일 공개적으로 경쟁 입찰을 하는 경우 반드시 우리 수중에 낙찰되리라고 보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창피함을 무릅쓰고 고적보존의 뜻을 주장하여 수의계약할 것을 강요하여 결국 15,000원에 매수하는 동시 읍내 유지 중 김태희, 김철환, 이동현, 정규택씨 등 11명과 상의하여 1인당 1,500원씩 균등 갹출(醵出)케 하고 위치는 당시 사립 청남학교(청주제일교회 경영) 구내에 이전 개축하기로 결정하여 학교에서 필요할 시에는 교실로 사용하여도 무방함을 조건부로 하였다.
이 유일한 고적을 보존치 못한다면 청주에는 사람이 없다는 명예스럽지 못한 말이 후세까지 전할 것인즉 철거문제에 대하여 어찌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재력 부족으로 단독 처리하기 어려워서 유지 여러분에게 고적 보존의 뜻을 설명하는 동시 이전 개축에 협조할 것을 호소하였던 바, 다행이 의외의 찬조를 얻어 새롭게 개축하였다.
이 이전개축에 있어서 글로 쓰기는 극히 단순하고 간단한 것 같이 생각되나 자초지종에 여러 가지의 난관과 허다한 애로와 복잡한 투쟁 이 있었음을 일일이 기록할 수가 없고 일반인의 협력도 많았으나 당시 예수교회 장로 고 김태희씨의 많은 노력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감사하는 바이다.
이 망선루 불하 이전 개축사실을 후일 기념키 위하여 개축 상량 시에 대들보 속에 본인 이외에 김태희, 김철환, 정규택, 이동현씨 등 11명의 기부인 명단을 상량문과 동봉하여 두었다.
일정말기에 사상 억제관계로 청남학교와 대성보통학교(김원근씨 경영)을 통폐합하여 시내 영운동에 공립청남학교를 설립하였다.
* 可東 李明求『자서전』상록출판사(1971)에서 발췌. 이명구는 신명의원을 경영하던 의사 출신으로 지역의 사회 문화 사업 및 장학 사업을 널리 폈으며, 해방 후 제3대 충청북도지사(1951-1952)에 역임한 지역 인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