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 김태희 선생 서거 70주년 '애국지사 일석 김태희' 펴내

충북 근대교육 선구자 김태희 선생 일대기 
서거 70주년 '애국지사 일석 김태희' 펴내 

2006년 07월 04일 <중부 매일> 기사  

김정미 기자 warm@jbnews.com

▲ 김태희 선생의 손자 김현구씨.&nbsp;

▲ 김태희 선생의 손자 김현구씨. 

우리지역 근대교육의 문을 연 김태희 선생(1877~1936)의 일대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선생의 서거 70주년을 맞아 손자인 김현구씨(72)가 펴낸 이 책은 ‘애국지사 일석 김태희’(일석회). 청주제일교회는 기일인 지난달 26일 교회 밀러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청주에서 태어나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했으며 1904년에는 청남초등학교를 설립한 선생은 교육구국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서며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일에 힘써왔다. 책에는 민족교육계몽운동과 청년운동, 독립운동으로 일생을 보낸 선생의 생애와 활동에 관련된 문헌과 각종 신문기사가 수록됐다. 

손자 김현구씨는 대학도서관과 정부문서기록보관소 등을 30여년간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황성일보와 대한매일신보, 공립신문(미국에서 발행), 경향, 조선, 동아일보 등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청주제일교회(목사 이건희)의 전신인 청주읍교회에서 청주청년회장과 장로직을 맡았던 선생은 청주 최초의 공립학교인 청주보통학교가 개교하기 3년 전, 15명의 학생을 모집해 방원근, 김원배 등 우국 청년들과 광남학교를 설립했으며 1908년에는 사립학교 허가를 얻어 청남학교로 학교명을 개명한다.

▲ 청남학교 학생과 선생님(1907년)&nbsp;

▲ 청남학교 학생과 선생님(1907년) 

1936년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휴교되기도 했지만 최창남, 곽재기, 신공균, 정순경 등 민족의식이 강했던 교사들로 인해 명맥을 이었고 상해임시정부와 독립군에 군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조부님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성장했다"며 "신교육을 가르치시고 선각자로서 독립투사로서의 삶을 사셨던 생애와 활동을 책으로 엮어 지금에서야 세상에 내놓게 되니 감개무량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선생의 이야기는 해방 이후 혼란과 한국전쟁을 지나오는 동한 묻혀오다 지난 1961년 충북대 조건상 교수가 ‘청주지’를 발간하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조 교수는 청주지의 '독립운동사 편'에 가족과 주변인의 고증을 거쳐 선생을 소개했고 이후 충북신보와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게 됐다.

이는 정부의 공적 재평가로 이어져 1963년에는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애곡장, 1991년 국가유공자증을 추서하게 된다.

김씨는 "조부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며 "1970년대 중엽부터 기록을 수집, 청남학교와 청주제일교회의 졸업생, 장로님 등을 통해 고증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청남학교 교사 망선루 청주제일교회 구내(1950년)&nbsp;

▲ 청남학교 교사 망선루 청주제일교회 구내(1950년) 

선생은 청주의 대표적 문화재인 망선루 수호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1년 일제가 경찰서 내 일본인의 검도와 유도 연마를 위해 무덕전을 짓겠다고 망선루를 헐자, 고적보전을 명분으로 2천만원에 인수해 교회 내에 복원, 청남학교와 청신여학교     

건물로 사용했으며 복원을 위한 모금운동과 민족문화보전운동을 펼쳤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온 김씨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교육구국운동의 선구자였던 조부님을 원망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1966. 12. 2.)은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선생의 미망인 곽정신 여사(당시 81세)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빼앗긴 땅이 국유지로 돼 버린 사연을 소개했으며 충청일보(1979. 3. 23.)는 어렵게 사는 독립투사의 아들 김기혁씨의 사연을 소개하며 ‘의로운 일이 아니면 행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안고 사는 의연한 후손의 모습을 조명했다.

이 기사에서는 김현구씨의 부친인 김기혁씨도 기미년(1919) 60돌을 맞아 아버지 김태희 선생의 행적을 수집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원문 출처: <중부 매일>2006년 07월 04일

* 정정: 기사 마지막 문단에 김기혁씨는 김현구씨의 부친이 아니라 작은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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